지난주 <카자흐스탄 여행기1>에 이어 덕성여대 국어국문학과 80학번 이혜란 씨의 <카자흐스탄 여행기2>를 싣는다.
투어 넷째 날
‘아씨고원’ 가는 날! 오늘 날씨는 여행하기 딱 좋다. 기대를 잔뜩하고 출발했는데 우리를 태우고 가기로 되어있는 차(오프로드 전용차)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계곡 초입에서 다른 차를 기다려야 했다.
기회는 찬스다. 이럴 때 시원하다 못해 시린 계곡물에 발도 담그고, 햇살에 초록초록 빛나는 나뭇잎들 배경으로 사진도 맘껏 찍고, 스트레칭도 하고, 노래와 율동을 하고 놀며 휴식을 취했다. 다행히 점심을 송어구이로 든든히 먹고 온 터라 지루함이 아닌 기다림의 미학으로 승화시킨 시간이 되었다. 특히 명상 안내자인 초긍정형의 친구가 매일 아침 명상 지도도 해주고, 불만이 생길 법한 상황이 될 때마다 “다 괜찮다, 다 좋다”를 연발해서 모두 릴렉스~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있는 가이드에게 나도 “Don’t worry, Be happy~” 노랠 불러주었다.
아씨고원으로 가는 길은 완전 울퉁불퉁 고난의 행군길이었다. 내가 탄 차량의 기사는 앳돼 보이는 청년으로, 어찌나 조심스레 운전하던지 안쓰럽기까지했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아씨고원. 앞 차량으로 먼저 도착한 친구들이 환영의 춤을 추며 우릴 반겨주는데 육십 중반에도 저렇게 귀여울 수 있구나, 깨달음!!
올라오는 길의 한쪽 면은 계곡, 다른 면은 육중한 산의 침엽수, 그 위에 파란 하늘에 걸린 팝콘 터질 때 피어나는 것 같은 흰 구름.
전체 일정 중에서 아씨고원이 나의 원픽이다.

푸른 주단을 깔아놓은 듯한 겹겹의 드넓은 초원에 노란 꽃, 분홍 꽃, 하얀 꽃, 보라 꽃, 하늘색 꽃이 잔뜩. 아아, 싱그러운 바람과 키 낮은 작은 꽃잎 야생화들이 앙증맞게 피어있는 이 고원은 그야말로 평화로운 천국이다. 잠시 앉아 명상의 시간을 갖고, 점점 길어지는 제 그림자도 밟아보고, 밤이 되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을 별들도 상상하고, 귓전에 스치는 바람에 설레이며 동상처럼 서 있는다. 말이 없다. 감상만이 오래 남아있다.
아쉬움을 남기고 아씨고원과 작별하고, 일몰이 아름다운 콕토베 전망대로 이동하여 알마티 북서쪽 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보며 맛 좋은 양갈비로 저녁식사를 했다. 한국에서 먹은 것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이번 여행 중 먹은 식사들은 다 내 입맛에 잘 맞아서 따로 챙겨온 고추장 쌈장이 거의 필요없었다.
투어 다섯째 날
오늘이 마지막 투어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여행도 오늘이 끝이다. 저녁땐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익숙해진 알마티호텔 조식을 마지막으로 즐기고 미모의 여성 가이드(현지인이며 전남대에 유학 왔었음)와 만나 하루 투어를 하게 되었다.
가까운 도심에 위치한, 전쟁영웅들을 기리는 28전사공원으로 갔다. 전쟁은 인류의 가장 큰 비극이지만 그 와중에도 인간의 정신사에 길이 새겨질 영웅들의 서사가 존재한다. 그러나 3차 세계대전은 인류의 멸망을 전제하기에 결코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다.
공원에는 아름다운 최초의 목조 성당이 있는데 미사 시간이라 실내는 들어가지 못하고 그 앞에서 기념사진만 찍어야 했다. 전통악기 박물관도 시간이 일러 입장을 포기하고 바로 올드마켓으로 갔다.
전통시장 구경은 언제나 흥미롭다. 소박한 분위기가 정겹고 맘이 편하다. 고려인들이 파는 김치, 된장, 고춧가루, 김밥 등은 한국인의 먹거리 그대로였다. 1937년부터 강제 이주로 이곳에 정착하여 박토를 일구어 농사를 짓고 농삿법을 보급시켰다고 한다. 역사의 한 단면과 만나는 듯했다. 재래시장에서 양털이 재료인 펠렛으로 만든 인형과 실크 스카프 등을 사고 즉석 과일주스를 마시고 나와 침블락으로 이동했다.
천산산맥의 일부를 케이블카로 올라가 볼 계획이었지만 수리 중이라 택시로 올라가 리프트를 타기로 했다. 그런데 뜻밖의 문제가 생겼다. 우리 일행을 본 안내원 남자가 우리 나이가 60이 넘어서 안전상 리프트 탑승이 안된다고 퇴짜를 논 것이다. 엥? 살면서 나이 때문에 거부당한 첫경험이다. ㅜㅜ. 그럼 티켓을 팔 때 공지를 했어야지! 천산을 오른다는 기대감으로 한참을 기다렸는데 기분이 싸했다. 그런 나이가 됐구나! 늘 나이보다 젊어보인다는 소릴 듣고 에너지도 짱이라는 평가와 수영과 요가로 단련된 체력으로 자신감이 넘쳤었는데….
인정하자, 수용하자! 또 다시 긍정회로를 돌리며 이왕 이렇게 된 거 여기 야외 레스토랑에서 눈 덮힌 천산을 바라보며 점심이나 맛있게 먹고 가자~ 푸짐한 샐러드에 소고기 스테이크, 맥주를 곁들여 친구들 수다와 함께 배불리 먹고 나니 언제 기분이 나빴냐는 듯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참 단순해서 좋다는.
자, 이제 좀 더 많은 상품이 있는 백화점 마켓으로 씩씩하게 가자~ 선물용으로 각자 필요한 보드카, 꼬냑, 꿀, 초코렛, 홍차, 치즈 등을 사서 한 보따리씩 들고, 한식당 ‘다사랑’에 가서 캐리어를 정리하고 점심을 먹었다. 이곳도 친구 지인이 운영하는 식당인데 한국보다 한국 음식을 더 잘했다. 친구를 보러 식당으로 찾아온 아는 언니의 증언으로 카작에서도 열심히 잘 산 친구의 20여 년이 보석처럼 빛났다. 낮술을 조금 마시며 행복하고 즐거웠던 카자흐스탄 여행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우리가 본 것은 카자흐스탄의 아주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겠지만, 판타스틱한 대자연에서 받은 감동은 우리의 감성을 풍부하게 해주었고 겸허한 인생관을 다시금 장착하게 해주었다.
한편, 카자흐스탄이 경제 성장의 일로에 있는 매우 다이나믹하고 개방적이며 활기찬 나라라는 인상을 받았다. 참, 달리는 길에서 마주친 수많은 양떼와 소떼들도 이 땅이 풍요의 땅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는, ㅎㅎ. 여행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카자흐스탄에 가보라고 강력하게 권하고 싶다.
우리들의 여행은 끝났지만 아마도 여행 이야기는 끝이 없이 계속될 것을 안다. 지금도 학창시절의 추억을 소환하며 배꼽 잡고 웃는 친구들인데 아무려면 첫 해외여행의 기억이 쉬이 사라질 수야 없겠지. 소중한 인연으로 만나 함께 늙어가는 친구들이 있어 행복하다. 사랑한다! 친구들아~ 건강하게 오래오래 만나자~~
공항에 배웅 나온 진재정씨 부부께 감사합니다.
비록 며칠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타국에서도 한국의 정치 상황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깊은 나라 사랑을 느꼈습니다.
‘골든투어’를 통해 한국과 카자흐스탄의 문화를 잇는 가교의 역할을 멋지게 하고 계셔서 고맙습니다. 전 일정 편안한 여행이 되게 신경 써 주시고 배려해 주시고, 맛있는 음식과 간식과 안락한 잠자리를 제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카자흐스탄이 나의 생애사의 한 페이지에 아름답게 기록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골든투어도 한인협회도 꾸준히 성장하고 발전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화이팅~~!!
2025년 5월 19일.
강원도 인제에서 이혜란 씀
(편집자 주 1) 이번 여행을 마친 후 귀국길에서, 여행기의 필자인 이혜란 씨의 오랜 친구이자 한인사회 최초로 여행사를 설립한 골든투어 카자흐스탄의 채혜수 전 대표와 그의 친구들은, 이번 여행을 통해 더욱 돈독해진 우정을 기념하며 카자흐스탄에 대한 깊은 애정을 담아 한인회에 10만 텡게를 후원하였다. 이에 한인회는 본지를 통해 채혜수 대표와 그의 친우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해왔다.
(편집자 주 2)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경험을 공유해 주세요.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을 공유해 주세요. 한인신문은 여러분의 소중한 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