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인 1996년 7월 3일,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이 결선 투표에서 공산당 후보였던 겐나디 주가노프를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선거는 격렬한 막후 정치 투쟁과 수많은 후보의 등장으로 러시아 역사상 큰 전환점이 된 사건이자,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독립국가연합(CIS) 소속 신생 독립국들에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정치학자 술탄 아킴베코프는 카자흐스탄 매체 텡그리뉴스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당시 카자흐스탄이 왜 이 선거를 큰 관심과 우려 속에 지켜보았는지 상세히 짚어내는 한편, 3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선거를 다시금 되짚어볼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1996년 대선 당시 구소련이 해체된 지는 5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1991년 12월 8일 벨라루스의 벨라베자 숲에서 러시아의 보리스 옐친, 우크라이나의 레오니트 크라우추크, 벨라루스의 스타니슬라프 슈슈케비치가 서명한 벨라베자 합의는 소련의 법적 종말과 독립국가연합의 탄생을 알린 결정적 계기였다. 이후 카자흐스탄을 포함한 옛 공화국들이 잇따라 독립을 선언했으나, 1996년에 이르러 합의 서명국 지도자 중 권좌를 지키고 있던 인물은 옐친이 유일했다. 우크라이나의 크라우추크는 1994년 대선에서 레오니트 쿠치마에게 패했고, 벨라루스의 슈슈케비치 역시 같은 해 치러진 첫 대선에서 4위에 그치며 알렉산드르 루카셴코에게 정권을 넘겨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옐친의 정치적 입지는 매우 취약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그의 지지율은 3~9%대에 머물렀다. 사회적 반발을 부른 체첸 전쟁과 예고르 가이다르 및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정부가 주도한 자유주의 경제 개혁의 부작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의 급격한 전환은 수많은 실업자를 양성하며 대중에게 큰 충격을 안겼고, 도시 인텔리겐치아 중심의 자유주의 유권자층마저 붕괴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민심은 1995년 하원의원(고스두마) 선거에서 그대로 반영되었다. 가이다르가 이끈 자유주의 정당 ‘러시아의 민주적 선택-연합민주주의자’는 3.86%의 득표율로 원내 진입 기준선인 5%를 넘지 못했고, 그리고리 야블린스키의 ‘야블로코’만이 6.89%로 원내에 입성한 유일한 자유주의 정당이 되었다. 반면 주가노프의 공산당은 22.8%를 득표해 제1당으로 올라섰으며, 블라디미르 지리놉스키의 자유민주당(LDPR)이 11%, 체르노미르딘의 여당인 ‘우리 집 러시아’가 10%를 기록했다. 득표율 5%를 넘지 못한 40여 개 소수 정당의 표가 상위 4개 정당으로 흡수되면서, 러시아 의회의 다수석은 공산당과 자유민주당 등 야권의 손에 넘어갔다.
의회를 장악한 공산당 세력은 1996년 3월 15일, 소련 해체를 선언했던 벨라베자 합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결의안을 통과시키며 안팎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현지 언론의 분석에 따르면, 이러한 행보는 러시아 내부뿐만 아니라 주변국에도 옛 소련 체제로의 회귀나 경제 개혁 실패에 따른 향수 분위기를 자극하며 상당한 불안감을 심어주었다. 주가노프의 승리가 소련 해체라는 역사적 결과를 뒤집는 역전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한 것이다.
위기를 느낀 옐친 진영에서는 다양한 권력 집단이 결집하기 시작했다. 군부와 정보기관 등 실력자 그룹, 체제 내 자유주의자, 그리고 담보대출부 주식매각(실물 자산 경매)을 통해 급성장한 신흥 재벌 ‘올리가르히’가 그 중심에 있었다. 초기 옐친의 측근 중 일부는 대선 자체를 취소하고 공산당을 불법화하는 극단적 방안까지 고려했으나, 옐친은 결국 선거 참여를 결정하고 자유주의 세력과 재벌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수용했다.
텡그리뉴스는 당시 옐친의 선거 운동이 철저히 공산주의 회귀에 대한 대중적 공포심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고 전했다. 막대한 자금력과 미디어 매체, 대중 예술인, 그리고 지방 엘리트들의 지지망이 총동원되었다. 결선 투표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1차 투표에서 옐친은 주가노프를 상대로 근소한 차이의 1위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이에 옐친 캠프는 결선 투표를 앞두고 3위를 차지했던 군 장성 출신의 알렉산드르 레베디와 정치적 타협을 맺으며 지지층을 흡수했다. 선거운동 와중에 옐친이 또다시 심근경색(인파르크트)을 겪는 건강 악재가 겹쳤으나, 최종 결선 투표에서 53.82%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극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결과적으로 1996년 러시아 대선은 구소련의 해체라는 역사적 사실을 최종적으로 확정 짓는 계기가 되었다. 텡그리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카자흐스탄을 포함한 포스트 소련 지역의 많은 국가와 국민은 옐친의 재선 성공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감을 표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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