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이 지난 30여 년간 구축해 온 ‘평화 중재국’으로서의 외교적 입지와 유산이 급변하는 글로벌 안보 지형 속에서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 핵무기 포기부터 국제 분쟁 중재, 유엔 평화유지군 참여에 이르기까지 아스타나가 걸어온 외교적 행보와 그 한계가 재조명되고 있다.
카자흐스탄 평화 외교의 핵심 자산은 1991년 세미팔라틴스크 핵실험장 전격 폐쇄와 세계 4위 규모였던 핵무기 포기 결단에서 비롯됐다. 이를 바탕으로 중앙아시아 5개국이 참여하는 비핵지대(CANWFZ)가 창설됐으며, 2012년에는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발효와 글로벌 핵실험 중단을 촉구하는 국제 캠페인 ‘프로젝트 ATOM’이 발족했다. 매년 8월 29일 세미팔라틴스크 폐쇄 기념일을 맞아 관련 행사가 이어지는 등 핵비확산은 카자흐스탄 외교 신뢰의 단단한 기반이 되어 왔다.
이어 카자흐스탄은 아시아 지역의 신뢰 구축과 안보 강화를 위해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 회의(CICA)’ 조성을 주도했다.
오르다(orda.kz)에 의하면, CICA는 서방과 비서방 체제 간의 갈등을 완화하고 아시아 대륙 내 다자간 대화 체계를 구축하는 데 실질적인 기반이 됐다. 또한 카자흐스탄은 글로벌 이슈를 논의하는 ‘아스타나 국제 포럼(AIF)’을 지속적으로 개최하며 기후변화, 경제 안보, 국제법 준수 등 인류 공동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자간 대화의 장을 제공해 왔다.
카자흐스탄은 단순한 비핵화 선언과 포럼 개최에 그치지 않고 국제 분쟁의 중재자이자 평화 유지의 실천자로 외교 지평을 넓혀왔다. 2017년부터 시작된 ‘아스타나 프로세스’는 시리아 내전 당사자들과 관련국들을 한 자리에 모아 인도적 구호 및 정전 협정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했다. 이는 이란 핵합의(JCPOA) 도출 과정에서 중립적 협상 장소를 제공한 것과 더불어 카자흐스탄을 유라시아의 독보적인 협상 플랫폼으로 각인시켰다.
최근에는 대화 중재를 넘어 실질적인 군사·인도적 평화유지 활동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오르다 보도에 따르면, 카자흐스탄은 유엔 평화유지군(UN PKF) 참여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왔으며, 최근에는 중동 골란고원 지역의 유엔정전감시단(UNDOF)에 독자적인 평화유지군 대대를 파병하는 등 국제 안보에 대한 실질적 기여도를 높여가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정세가 진영 간 대립과 강대국 간 갈등으로 치달으면서 카자흐스탄의 평화 외교 역시 명확한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가장 대표적이고 단적인 사례가 우크라이나 분쟁 해결에 대한 카자흐스탄의 거리두기 행보다. 2026년 7월 25일 옴스크에서 열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을 위한 중재자 역할을 직접적으로 사양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러시아가 별도의 중재자 없이 스스로 분쟁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밝히며, 분쟁 초기 이스탄불에서 논의되었던 협상 공식으로 돌아갈 것을 제안했다. 이는 카자흐스탄의 중재 외교 모델이 모든 분쟁에 무차별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각 분쟁의 특성과 대외 외교적 환경에 따라 명확히 한계를 설정하고 유연하게 접근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러시아, 중국 등 인접 강대국과 서방 세계 사이에서 아스타나가 고수해 온 ‘다변화 외교(Multi-vector strategy)’ 역시 한층 정교한 균형 감각을 요구받고 있다. 선의에 기반한 대화 공간 제공을 넘어 국가의 안보와 경제적 실리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는 엄혹한 정치적 현실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오르다는 카자흐스탄이 오랜 기간 쌓아온 평화 중재국으로서의 자산을 바탕으로, 향후 국제기구와의 다자 협력을 더욱 공고히 하는 한편 한층 실용적이고 정교한 안보 외교 전략을 펼쳐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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