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일보가 1970년대 파미르고원의 7,000m급 고봉을 여성만으로 구성된 4인조 팀으로 세계 최초 등정하며 소련 산악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고려인 여성 등반가 안토니나 일리니치나 손의 삶과 산악 인생을 조명했다.
고려인 강제 이주 이듬해인 1938년 카자흐스탄 카라간다에서 태어난 안토니나 손은 어린 시절 타슈켄트로 이주해 성장했다. 이후 중앙아시아 국립대학교(현 미르조 울루그베크 우즈베키스탄 국립대학교) 지질학부에 진학한 그는 노동절 연휴 기간 학생들과 산을 찾던 전통 속에서 등반가의 꿈을 품기 시작했다. 그는 대학 스포츠 부서에서 체력을 다진 뒤 철학과 대학원에 진학하며 학업과 훈련을 병행했다.
이후 친척들이 있던 알마아타로 거주지를 옮긴 안토니나 손은 의과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며 ‘옌베크’와 ‘로코모티프’ 스포츠 클럽에서 본격적으로 산악 활동에 매진했다. 고려일보 보도에 따르면, 그는 1971년 여름 쿵게이 알라타우 산맥의 듀레봉을 최초 등정하고 최고 난이도로 꼽히는 탈가르봉 서벽 코스를 완주했다. 그해 카자흐 SSR 스포츠위원회로부터 ‘올해의 산악인’으로 선정된 그는 소련 산악운동 스포츠 마스터 칭호를 취득했으며, 이는 현재까지도 고려인 여성으로서는 유일한 기록이다.
체육계의 큰 이정표가 된 사건은 1972년 여름에 일어났다. 소련 성립 50주년을 기념해 파미르고원에서 열린 ‘국제 알피니아다’ 대회에서 엘비라 샤타예바가 이끄는 여성만으로 구성된 4인조 원정대(엘비라 샤타예바, 갈리나 로잘스카야, 일시야르 무하메도바, 안토니나 손)가 해발 7,105m의 예브게니야 코르제네프스카야봉(현 오조디봉) 등정에 성공했다. 남성 대원의 지원 없이 여성만으로 구성된 팀이 7,000m 이상 고봉을 자력으로 등정한 것은 전 세계적으로도 전례가 없는 최초의 대기록이었다.
안토니나 손은 25kg에 달하는 배낭을 메고 가파른 암벽과 빙하, 산소 부족을 견디며 정상을 밟았던 당시를 회상하면서, 등반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정상을 밟은 후 하산하는 과정이라며 대부분의 비극은 하산 길에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년 뒤인 1974년, 파미르고원 레닌봉(현 이븐 시나봉)을 등반하던 엘비라 샤타예바 원정대 8명 전원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당시 생후 4개월 된 딸을 돌보느라 원정에 합류하지 못했던 안토니나 손은 신문을 통해 뒤늦게 동료들의 비보를 접하고 깊은 슬픔을 겪어야 했다. 이 비극적인 사고 이후 소련 내에서는 여성 단독 산악 팀 구성이 장기간 금지되기도 했다.
파미르고원 등정 성과를 인정받아 안토니나 손을 비롯한 대원 4명 전원은 세계 기록이나 올림픽 기록 수립자에게 주어지는 소련 스포츠위원회의 최고 영예인 ‘체육 공로 금메달’을 받았다. 소련 산악운동 역사상 이 메달을 받은 인물은 단 10명에 불과하다.
등산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안토니나 손은 서로를 묶어주는 로프의 매듭처럼 견고한 ‘진정한 우정’과 산 위에서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목숨을 맡길 수 있는 ‘절대적인 신뢰’라고 답했다고 고려일보는 전했다. 그는 오랜 기간 알마아타 국립 의과대학(현 아스펜디야로프 카자흐 국립 의과대학)에서 교편을 잡는 한편, 카자흐스탄과 카프카스 지역 산악 캠프의 코치 및 강사로서 수많은 후학을 양성하며 카자흐스탄 체육사에 깊은 족적을 남겼다.
/ 고려일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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