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한인신문은 알마티한국교육원의 후원으로 미래 언론인을 꿈꾸는 ‘청년 인턴 기자단‘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번 호에도 청년 기자들이 직접 취재하고 작성한 기사를 연재합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카자흐스탄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인 젤톡산을 주제로 직접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진행해 청년들의 시각으로 그 의미를 되짚어 봤습니다. 앞으로도 한국과 카자흐스탄의 교육과 문화, 사회, 역사 등 다양한 이야기를 깊이 있게 담아 독자 여러분께 전할 예정입니다. 청년 기자들의 성장과 도전에 따뜻한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 키실랴로바 아이사울레, 오카노바 아넬, 최선율, 김건우 인턴기자
카자흐스탄에서 ‘젤톡산(Желтоқсан)’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을 넘어 독립과 민족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역사 가운데 하나다. 1986년 12월 알마티에서 시작된 시위는 당시에는 강제 진압으로 끝났지만, 오늘날에는 카자흐인의 독립 의지와 민족적 자긍심을 상징하는 역사적 전환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렇다면 당시의 외침은 오늘날 카자흐인들의 정체성과 독립 의식에 어떤 영향을 남겼을까.
젤톡산은 카자흐어로 ’12월’이라는 뜻이다. 1986년 12월 16일, 소련 정부가 오랫동안 카자흐스탄을 이끌어 온 디무하메드 쿠나예프를 해임하고 러시아 출신인 겐나디 콜빈을 카자흐스탄 공산당 제1서기로 임명하자 이에 반발한 학생과 시민들이 알마티 공화국광장으로 모여 시위를 벌였다. 소련 당국은 시위를 강제 진압했고, 많은 참가자가 체포돼 수감됐으며 학생들은 퇴학, 직장인들은 해고되는 등 큰 불이익을 겪었다.

오늘날 젤톡산 사건은 카자흐 민족의 자존감과 독립 의식을 일깨운 역사적 전환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인턴기자단은 카자흐인 34명을 대상으로 젤톡산 사건이 카자흐인의 정체성에 미친 영향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97.1%는 젤톡산 사건이 카자흐인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라고 답했으며, 2.9%만이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또한 ‘젤톡산 사건으로 인해 카자흐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더욱 커졌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도 응답자의 97.1%가 그렇다고 답했고, 2.9%는 변화가 없었다고 응답했다.
‘젤톡산 사건이 카자흐인의 정체성을 일깨워 주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는 91.2%가 동의했다. 반면 2.9%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고, 2.9%는 명확한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으며, 나머지 2.9%는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또한 ‘젤톡산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현재의 카자흐스탄은 어떻게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76.5%가 ‘독립의 가치를 지금처럼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반면 11.8%는 ‘큰 변화는 없었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이 밖에도 일부 응답자는 “젤톡산 사건이 없었더라도 카자흐 민족은 언젠가 자신의 권리와 민족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일어섰을 것”이라고 답했으며, 또 다른 응답자는 “종속 의식이 더 오래 지속돼 민족 정체성과 독립 의식의 형성이 늦어졌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는 등 다양한 시각을 보였다.

설문조사와 함께 진행한 인터뷰에서는 당시 알마티에 거주했던 시민 A씨의 증언도 들을 수 있었다. A씨는 1986년 12월 2번 버스를 타고 푸르마노바 거리를 지나던 중 우연히 시위 현장을 목격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시위대가 도로를 막아 버스가 멈춰 섰고, 승객들이 모두 버스에서 내리자 경찰이 일제히 사람들을 검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A씨는 “갑자기 군중과 집회, 군인들의 포위망을 마주하게 됐다. 무슨 상황인지도 이해하지 못한 채 매우 긴장했고 두려웠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경찰과 군은 시위 참가 여부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체포하기 시작했고, 군인들이 일렬로 군중을 몰아붙였다”며 “당시에는 시위에 대한 연대감보다 전쟁이 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공포를 더 크게 느꼈다”고 말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A씨가 젤톡산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A씨는 “그 당시에는 그저 구호를 외치는 통제되지 않는 군중으로만 보였다. 카자흐스탄의 독립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독립이 올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지금은 그 젊은이들이 독립을 위해 싸웠다고 생각한다. 당시에는 알지 못했던 의미를 이제야 이해하게 됐고, 그날의 사건은 카자흐스탄의 역사로 남았다”고 회고했다.

이 증언은 당시 일반 시민들조차 젤톡산 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즉각적으로 인식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의 사건이 민족 정체성과 독립 의식을 상징하는 역사로 재해석될 수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1991년 카자흐스탄이 독립한 이후 젤톡산 사건은 역사 교육과 추모 행사 등을 통해 꾸준히 기억되고 있으며, 젊은 세대에게는 자유와 국가의 의미를 되새기는 중요한 역사로 전해지고 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도 나타났듯 많은 카자흐인들은 젤톡산을 단순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날 국가 정체성과 독립의 가치를 이해하는 출발점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는 방식은 한 사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토대가 된다. 젤톡산 사건을 바라보는 오늘날 카자흐인들의 인식은 독립과 자유의 가치가 세대를 거쳐 어떻게 계승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에서 한국인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4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도 젤톡산은 카자흐스탄 사회 속에 살아 있는 역사이며, 앞으로도 다음 세대에게 자유와 독립, 그리고 국가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소중한 역사적 자산으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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