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9일,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세상에 반포한 지 제580돌을 맞이했다. 특히 올해는 1926년 일제강점기 엄혹했던 시기에 겨레의 말과 글을 지키고자 첫 한글날 행사를 개최한 지 정확히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전국 각지에서는 세종문화회관 경축식을 비롯해 국립한글박물관의 특별전 <일구이륙 무한이륙> 등 다채로운 문화 행사가 펼쳐지며 한 세기 동안 이어져 온 한글날의 역사를 조명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매년 기쁘게 맞이하는 한글날의 첫 이름은 ‘가갸날’이었다. 100년 전인 1926년, 조선어연구회(현 한글학회)와 신민사는 훈민정음 반포 8회갑(480돌)을 기념하여 11월 4일(당시 음력 9월 29일) 서울 식도원에서 첫 기념식을 거행했다.
일제의 민족문화 억압에 맞서 민족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마련된 이 행사는 특정한 날을 정해 사회적으로 기념한 당시로서 흔치 않은 사건이었다. ‘가갸날’이라는 명칭은 한글을 배울 때 초성 ‘ㄱ’과 모음을 결합해 ‘가, 갸, 거, 겨…’ 하며 익히던 민간의 친숙한 표현에서 따온 것이었다.
이후 ‘한글’이라는 용어가 정착함에 따라 1928년 기념일의 명칭은 ‘한글날’로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초기에는 세종실록의 기록을 바탕으로 음력 9월 29일을 기준일로 삼았으나, 매년 날짜가 바뀌는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1930년대 들어 양력 환산 논의가 본격화되었다.
율리우스력과 그레고리력 환산 과정을 거치며 10월 28일 등으로 변경되던 한글날은, 1940년 경북 안동에서 국보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면서 마침내 정당한 기준을 찾게 되었다. 해례본 정인지 서문의 ‘9월 상한(상순)’이라는 기록을 근거로, 상순의 마지막 날인 음력 9월 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10월 9일이 훈민정음 반포일로 확정된 것이다.
광복 후 10월 9일로 고정된 한글날은 1949년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었으나, 1990년 경제 효율성을 이유로 공휴일에서 제외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한글 관련 단체와 시민들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2005년 대한민국 5대 국경일로 승격되었고, 2012년 공휴일 재지정을 거쳐 2013년부터 온 국민이 함께 쉬며 기리는 날로 자리 잡았다.
2026년 한글날 제정 100주년은 지나온 한 세기를 성찰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이정표이다. 올해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한글 점자 체계인 ‘훈맹정음’ 반포 100주년이자 국어학자 주시경 선생 탄생 150주년이 함께 겹쳐 그 가치를 더한다.
일제의 가혹한 탄압 속에서도 목숨을 걸고 우리말 맞춤법을 정립하고 사전을 편찬했던 선각자들의 문화 독립운동은, 오늘날 한글이 세계인이 즐기는 K-컬처의 핵심 언어 자산으로 성장하는 든든한 토대가 되었다. K-팝의 노랫말과 K-드라마의 대사, K-영화의 서사와 K-웹툰의 창의적 표현이 세계인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배경에도 한글의 과학성과 표현력이 자리하고 있다.
과거 한글이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문화 수호의 문자’였다면, 오늘날에는 세계인들이 한국 문화를 이해하고 경험하는 ‘문화 공유의 문자’로 그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한글로 자신의 이름을 써보며 한국 문화에 다가가는 현상은 한글이 더 이상 한 민족만의 문자가 아닌 세계와 소통하는 문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준다.
세종대왕의 애민정신과 100년 전 ‘가갸날’ 선포자들의 뜨거운 열망이 모여 피어난 한글날. 오늘날 우리가 쓰는 우리 글자 속에는 숭고한 보존의 역사와 삶의 지혜가 스며 있다. 그리고 그 한글은 이제 K-콘텐츠를 세계로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 국경과 언어의 벽을 넘어 새로운 문화적 가치를 창조하고 있으며, 한 세기 전 우리글을 지키려 했던 선열들의 헌신은 오늘날 한글을 세계인이 배우고 즐기는 K-문화의 문자로 꽃피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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