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이 지난 8월 23일 새로운 헌정 체제 아래 사상 처음으로 단원제 의회인 ‘쿠룰타이(Kurultai)’ 구성을 위한 조기 총선을 치렀다. 이번 선거는 기존의 양원제 의회 구조를 단원제로 전환하고 전면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이후 치러진 첫 선거라는 점에서 카자흐스탄 정치사에서 중대한 이정표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선거 과정과 결과를 둘러싸고 국가의 역사적 전통 계승과 효율성 강화라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권위주의로의 회귀와 야당에 대한 압박을 우려하는 국제사회의 비판이 맞서고 있다.
■ 역사적 전통과 ‘단원제’ 개혁: 의회 구조의 대전환
이번 총선은 올해 3월 15일 치러진 헌법 개정 국민투표가 87.15%의 찬성률로 통과되고, 해당 개헌안이 7월 1일부로 공식 발효됨에 따라 기존 의회가 해산되면서 조기에 치러지게 되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기존의 상원(세나트)과 하원(마질리스)으로 나뉘어 있던 양원제 의회를 폐지하고, 145석의 단원제 의회인 ‘쿠룰타이’ 하나로 재편한 점이다. ‘쿠룰타이’라는 명칭은 과거 유라시아 초원지대 유목민 사회에서 부족장과 귀족들이 모여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던 집단 의사결정 통치 전통에서 유래한 것이다.
김대식 전 주카자흐스탄 대한민국 대사는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국민회의를 뜻하는 ‘쿠룰타이’라는 명칭은 카자흐스탄의 역사적 전통을 반영하고 국가 정체성을 강화하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또한, 기존 양원제에서 단원제로의 전환과 전국 단위 비례대표제(5% 봉쇄조항 적용) 도입은 최고 대표기관을 보다 효율적이고 전문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제도적 노력으로 해석된다. 한국 역시 건국 초기 양원제를 시도했다가 1962년부터 단원제를 일관되게 유지하며 민주주의 발전과 경제 성장을 이룬 경험이 있다는 점에서 카자흐스탄의 이번 시도는 주목받고 있다고 밝혔다.
■ 선거 결과 분석: ‘신생 여당’ 아딜레트의 독주와 5당 체제 확립
카자흐스탄 중앙선거위원회(CEC)가 발표한 예비 집계 결과에 따르면, 예상대로 친정부 성향의 신생 여당인 ‘아딜레트(Ädilet)’가 71.17%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선두에 올랐다.
아딜레트는 이번 선거를 앞둔 지난 6월 1일 공식 등록된 신생 정당이었으나, 직후 기존 원내 압도적 다수당이었던 집권당 ‘아마나트(Amanat)’를 전격 흡수 통합하면서 단숨에 거대 여당으로 발돋움했다. 이 합병을 통해 아딜레트는 기존 아마나트가 보유했던 방대한 지역 조직과 자원, 인프라를 그대로 승계받아 선거판을 주도했다.
의회 진출을 위한 5%의 문턱을 넘어선 정당은 출마한 7곳 가운데 총 5개 당으로 압축된다.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아딜레트(Ädilet)는 인공지능 분야의 보편 교육과 인프라 정비의 수치적 목표를 공공이 전면에 나서 주도·관리하는 중도 기술관료형 혁신안을 표방했다. 그 뒤를 이은 아울(Auyl)은 6.26%의 표를 모으며 2위를 기록했는데, 영세 부업 농가의 체계적 양성과 농촌 지역의 정주 여건 개선을 골자로 한 전방위적인 농촌 공동체 복원을 약속했다. 5.56%의 선택을 받은 레스푸블리카(Respublica)는 공공 자산의 민간 매각 및 불필요한 행정 규제의 완화, 그리고 정보통신과 창업 분야의 자율성 증진을 선도하는 시장 중심의 개혁안을 전면에 펼쳤다. 5.21%를 얻은 악졸(Aq Jol)은 사적 재산권을 강력히 보호하는 한편, 입법부의 정부 행정조사 권한 및 예산 심의 기능을 강화하자는 의회주의와 자유 우파의 정체성을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5.11%를 득표하며 간신히 원내에 턱걸이한 전국사회민주당(OSDP)은 초고소득자 대상의 차등 과세 적용과 노동시간의 단계적 단축 등 과감한 형평성 위주의 조치와 제왕적 대통령 권한의 의회 분산을 정교하게 결합했다.
한편, 카자흐스탄 인민당(3.11%)과 바이타크 녹색당(1.07%)은 문턱을 넘지 못해 원내 진입이 좌절되었으며, 현 체제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내는 ‘모두 반대(Against All)’ 표는 2.51%로 집계되었다.
■ 국제사회의 차가운 시선: 훼손된 다원주의와 선거 공정성 의문
형식적인 제도 개혁에도 불구하고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의회연맹, 민주제도인권사무소(ODIHR), 유럽평의회 의회연맹(PACE) 등으로 구성된 국제선거참관단(IEOM)의 평가는 혹독했다.
참관단은 공동 예비 평가에서 이번 조기 총선의 선거 절차와 운영은 전반적으로 준비가 이뤄졌지만, 정치적 다원주의가 충분히 보장되지 않은 환경에서 진행됐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원내 진입에 성공한 정당들을 포함해 출마한 모든 정당이 본질적으로 현직 토카예프 대통령의 개혁 노선과 정책을 지지하는 세력들이었기에, 유권자가 서로 다른 정책과 정치적 방향을 비교해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사실상 제한됐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선거 제도의 개편으로 무소속(독립) 후보가 출마할 수 있는 길이 사라진 것은 시민의 정치 참여 기회를 좁히는 조치로 지적됐다. 또한, 신생 여당 아딜레트가 독점하다시피 한 대규모 선거 캠페인이 지방자치단체의 대규모 무료 공공 행사 및 콘서트 등과 겹쳐 기획되거나 공공 부문 근로자들이 행사장 동원에 조직적으로 동원되는 등 공적 자원의 심각한 오남용이 발생해 정당의 선거운동과 국가의 행정·공공 활동 사이의 구분이 흐려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선거 당일 투표와 개표 과정에서도 공정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참관단은 공식 발표된 74.19%의 높은 투표율과 참관단이 직접 개별 투표소에서 관찰한 실제 투표율 데이터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결정적으로, 전체 개표 분석 대상 투표소 중 약 3분의 1을 초과하는 상당수 투표소(119개소 중 40곳)에서 중대한 절차 위반과 투표수 검산 누락이 적발되어 개표 결과의 신뢰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더해,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일부 언론인들의 표적 기소 및 정부에 의한 SNS 계정 임의 차단 등으로 사회 전반에 자기검열이 고착화되고, 외풍 차단을 빌미로 독립적인 시민사회 참관 단체들에 대한 재정 및 활동 압박을 대폭 늘린 점 역시 이번 선거의 공정성을 결정적으로 훼손한 주범으로 보고서에 상세히 명시되었다.
■ 전망: 토카예프 대통령의 권력 강화와 2036년 장기 집권 시나리오
전문가들은 이번 선거를 거치며 단원제 쿠룰타이가 구성됨에 따라,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 영향력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OSCE가 참여한 국제선거참관단(IEOM) 역시 새로 구성될 의회가 실질적인 정치적 경쟁과 견제 기능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을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새로 출범하는 의회는 야당의 실질적인 견제 없이 정부의 개혁안과 정책을 일방적으로 뒷받침하는 거수기 역할에 그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실제 주한 카자흐스탄 대사관 자료와 현지 매체에 따르면, 이번 개헌으로 대통령 유고 시 안정적 승계를 위한 부통령직이 신설되는 한편 대통령의 권한도 크게 확대되었다. 더욱 주목할 점은 권력 승계 체제의 정비와 대통령의 임기 연장이다. 국내 언론인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지난 7월 7일 카자흐스탄 헌법재판소는 “새 헌법에 따른 대통령 임기 제한(7년 단임제) 규정은 신헌법 발효 이후 임명되는 경우에만 적용된다”는 결정적인 유권해석을 내렸다.
이에 따라 토카예프 대통령의 기존 임기(2019년 및 2022년 당선)는 소급 계산에서 제외되며, 현재 임기가 만료되는 2029년 대선에 다시 출마하여 당선될 경우 오는 2036년까지 합법적으로 집권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프랑스 AFP 통신은 이러한 행보에 대해 과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개헌을 통해 자신의 기존 임기를 백지화하고 장기 집권을 도모했던 방식과 매우 유사하다고 꼬집어 전했다.
결국 이번 카자흐스탄 조기 총선은 의회의 효율성을 높이고 역사적 정통성을 복원한다는 명분 아래 대대적인 정치 개혁을 추진했지만, 그 결과가 대통령의 권력 기반을 강화하고 장기 집권 가능성까지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게 됐다.
다만, 국가 시스템의 법치 강화와 투자 보장 제도의 정비는 한국을 비롯한 해외 투자 파트너들에게 비즈니스 예측 가능성을 높여주는 요인이 될 수 있어, 향후 카자흐스탄 정부가 사회적 안정 속에서 경제 현대화 성과를 어떻게 입증해 나갈지가 향후 정국의 주요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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