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톡산 사건은 카자흐어로 ‘12월’이라는 뜻으로, 1986년 12월 16일부터 20일까지
카자흐스탄에서 일어난 시위이다. 이 사건은 소련 정부가 카자흐스탄 공산당 제1서기를
교체한 것에 대한 반발로 시작되었다. 시위는 소련 당국에 의해 강제로 진압되었으며, 많은
시위 참가자들이 체포되어 감옥에 수감되었다. 또한 사건에 참여한 학생들은 학교에서
퇴학당했고, 직장인들은 해고되는 등 심각한 불이익을 겪었다.


젤톡산 사건이 카자흐인의 정체성에 미친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카자흐 사람을 대상으로
객관적 질문으로 구성된 설문조사를 했다. 본 설문에는 총 34명이 참여하였다.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들은 젤톡산 사건이 오늘날까지도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으며 카자흐인의 정체성을 일깨워주고 보여주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조사 첫 번째 질문에서는 “절톡산 사건은 카자흐스탄 사람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생각하시나요?”라고 물었다. 그 결과, 응답자의 97.1%가 이에 동의하였으며,
2.9%만이 동의하지 않았다.
두 번째 질문에서는 “젤톡산 사건으로 인해, 카작인이 카작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더욱
자부심을 갖게 됬다 생각하시나요?”라는 문항이 제시되었다. 응답자의 97.1%는 자부심이
강화되었다고 답한 반면, 2.9%는 자부심에 아무 변화가 없었다고 응답하였다.
세 번째 질문으로, 젤톡산 사건이 카자흐인들에게 카자흐인의 정체성을 일깨워줬다
생각하는지 물었다. 이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91.2%가 동의하였다. 또한 2.9%는 일깨워주지
않았다고 응답하였고, 2.9%는 명확한 답변을 제시하지 못했으며, 나머지 2.9%는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하였다.
네 번째 질문에서는 “젤톡산 사건이 일어났지 않았더라면, 현재 카자흐스탄이 어떻게
달라졌을까요?”라고 물었다. 응답자의 76.5%는 카자흐스탄의 독립의 가치를 몰랐을 거라
답하였다. 반면 11.8%는 큰 변화가 없었을 것이라고 응답하였다. 또한 답변에서 다양한
대안적 시각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떤 응답자는 1986년 젤톡산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카자흐 민족은 언젠가 자신의 권리와 민족적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결국
봉기했을 것이라고 보았다. 실제로 한 응답자는 “카자흐인들은 결국 일어섰을 것이다”라고
답하며 자유와 독립을 향한 열망이 젤톡산 사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였다.
또한 어떤 응답자는 젤톡산 사건이 없었다면 사회 전반에 이른바 ‘예속적 의식(종속 의식)’이
더 오랫동안 지속되어 민족 정체성과 독립 의식의 형성이 지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하였다.
인터뷰를 통해 젤톡산 사건의 또 다른 측면이 드러났다. 당시 사건을 직접 목격한 한 시민의
증언은 그 시대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해준다. 그녀는 1986년 12월, 2번 버스를 타고
푸르마노바 거리를 지나가던 중 우연히 사건의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다. 시위대가 도로를
막아 버스를 멈춰 세웠고, 승객들이 모두 내리자 경찰이 일제 검거를 시작했다. 그녀는
당시의 분위기를 이렇게 회상한다. 군중과 집회, 군의 포위망을 갑작스럽게 마주하게
되었으며, 분위기는 매우 긴장되어 있었고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어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경찰과 군은 시위대 여부를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을 체포하기 시작했으며,
일렬로 줄지어 군중을 몰아붙였다.
사건을 전혀 몰랐던 그녀는 연대감보다는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꼈다고 말한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지금, 그녀의 시각은 달라졌다.
“그 당시에는 그냥 구호를 외치는 통제 불능의 군중일 뿐이었어요. 카자흐스탄의 독립이
뭔지도 몰랐고요. 지금은 다르게 해석하니까 젊은이들이 독립을 위해 싸웠다고 생각하지만,
그때는 그냥 군중이었어요. 독립이 올 거라고는 아무도 몰랐죠. 그리고 이제 그것은 역사가
되었습니다.”
이 증언은 당시 일반 시민들이 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즉각적으로 인식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건이 민족 정체성과 독립 의식의 관점에서
재해석되어 왔음을 잘 드러낸다.
젤톡산 사건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을 넘어, 카자흐 민족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강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설문조사 결과에서 나타나듯, 응답자의 압도적
다수가 이 사건을 카자흐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정체성을 일깨운 사건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는 세대를 초월하여 집단적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주목할 점은, 당시 현장을 직접 목격한 시민의 증언에서 드러나듯, 사건 당시에는 많은
이들이 그 역사적 의미를 온전히 인식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젤톡산 사건은 카자흐스탄 독립의 정신적 토대이자 민족 저항의 상징으로
재해석되어 왔다. 이는 역사적 사건이 사후적으로 의미를 획득하고 정체성 형성에 기여하는
방식을 잘 보여준다.
응답자의 76.5%가 “젤톡산 사건이 없었다면 독립의 가치를 몰랐을 것”이라고 답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이 사건은 카자흐스탄이 1991년 독립을 이루기 이전부터 이미 그 씨앗을 뿌린
역사적 기점으로 인식된다. 설령 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 카자흐 민족은
봉기했을 것이라는 시각 역시, 자유와 독립을 향한 민족적 열망이 젤톡산 사건에만
귀속되지 않는 깊은 뿌리를 지닌 것임을 말해준다.
결론적으로, 젤톡산 사건은 카자흐 민족의 정체성 형성에 있어 과거와 현재를 잇는 중요한
역사적 연결고리이며, 오늘날의 카자흐스탄 사회가 자국의 독립과 주체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기억하는지를 반영하는 거울이라 할 수 있다. 이 사건에 대한 기억이 살아있는 한,
카자흐인의 민족적 자긍심과 정체성 역시 계속해서 다음 세대로 이어져 나갈 것이다.
참고 문헌:
https://www.cabinet.ox.ac.uk/zheltoqsan-kazakhstan-0. 2026년 6월 4일에 들어감
ЖЕЛТОКСАН В ЗАПАДНОЙ ПРЕССЕ — Qalam. 2026년 6월 4일에 들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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