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붉은 말띠해다. 12간지에서 말띠는 일곱 번째에 해당하며, 태양과 불(火)의 기운을 품은 해로 여겨진다. 추진력과 생명력, 활력과 자유, 독립심을 상징하는 말(馬)은 한국 전통문화에서 밝고 개방적인 성격을 대표하며,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는 힘을 의미한다. 또한 농경·운송·군사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말은 풍요와 힘, 공동체적 결속을 상징하는 존재로 자리 잡아, 말띠해는 언제나 특별한 의미를 지닌 해로 기억되어 왔다.
이처럼 말은 한국뿐 아니라 초원의 민족들에게도 삶과 문화의 중심이었다. 카자흐스탄의 대초원에서 말은 단순한 가축이 아니라 인간과 공동체의 질서를 지탱하는 기둥이었다. 유목 문명과 문화적 뿌리를 되새기는 계기로서 말의 해를 바라보는 시각은, 한국과 카자흐스탄 모두에서 공통된 울림을 준다.
카자흐어 속에는 말의 존재가 얼마나 세밀하게 구분되어 왔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카자흐스탄의 역사학자 아이벡 샬김베코프는 카자흐어 속에 남아 있는 다양한 명칭을 통해 그 특별한 위치를 설명한다. 전체 말을 지칭할 때는 жылқы(즐크)라 하지만, 어린 말은 тай(타이), 아직 성숙하지 않은 수말은 кунан(쿠난), 암말은 бие(비에), 승용마나 거세된 수말은 ат(아트),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 수말은 айғыр(아이그르)라 부른다.
그 중에서도 혹독한 기후 속에서 무리를 지키는 айғыр는 단순한 수컷 말이 아니라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는 상징이었다. 무리를 보호하고 이동을 주도하며, 생존을 위한 질서를 세우는 중심축으로서, айғыр는 초원의 질서와 인간 사회의 원리를 동시에 비추는 거울이었다. 샬김베코프는 이러한 구조가 단순한 동물 생태를 넘어 인간 공동체의 조직 원리와도 맞닿아 있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카자흐스탄에서 말과 관련된 다양한 이름은 단순히 몇 가지 구분에 그치지 않고, 말의 나이와 성장 단계, 성별과 역할에 따라 더욱 세밀하게 갈라져 나간다. 그 언어적 층위 속에는 초원의 사람들에게 말이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사회적 질서와 문화적 체계 속에서 정교하게 자리 잡아 온 존재임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는 마치 농경사회인 한반도에서 ‘비(雨)’라는 어휘가 이슬비, 가랑비, 안개비, 는개, 여우비, 소낙비, 단비 등으로 계절과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분화한 것과도 같다. 자연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그 차이를 언어로 담아내려는 태도는, 초원의 말과 한반도의 비가 서로 다른 풍경 속에서 같은 인간적 감수성을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카자흐스탄에서 말의 중요성은 고대부터 뚜렷하게 드러난다. 청동기 시대와 초기 철기 시대에 말은 정착 생활에서 유목 생활로의 전환을 가능하게 한 핵심적 요소였다. 이동과 생존의 기반이 되었고, 이는 민족 형성과 공동체 확장, 생활 양식의 재편과 직결되었다. 알마티 천산 줄기에는 Мың жылқы(믕즐키)라는 봉우리가 있다. 이름 그대로 ‘천 마리의 말’을 뜻하는 이 봉우리와 능선은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수많은 말들이 초원을 질주하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자연과 인간, 그리고 말이 함께 어우러진 세계관이 이 지형 속에 새겨져 있다.

문화 속에서도 말은 늘 중심에 있었다. 서사시 “Кобланды батыр(코블란드 바뜨르)”에서는 영웅이 전투에서 말을 동반자로 삼아 승리를 거두는 장면이 반복된다. 속담 “Ат – ер қанаты(아트 – 예르 카나트)”는 “말은 사람의 날개다”라는 뜻으로, 인간의 자유와 힘을 확장하는 존재로서 말의 위상을 드러낸다. 또 “Жылқы – малдың патшасы(즐크 – 말등 파트샤스)”, 직역하면 “말은 가축의 왕이다”라는 표현은 말이 다른 가축과 달리 특별한 지위를 지닌다는 인식을 담고 있다. 이러한 속담들은 모두 말과의 관계가 윤리관과 자연과의 조화, 그리고 세계에 대한 존중심을 형성해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경제와 삶의 기반에서도 말은 핵심적이었다. 고기와 젖, 가죽을 제공하며, 교역과 축제, 전통 의례에서 중심적 역할을 맡아 왔다. 특히 кумыс(쿠므스)라 불리는 말젖 발효 음료는 건강과 활력을 상징하는 대표적 전통 식음료로, 카자흐인의 생활문화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또한 말은 장거리 이동과 교역을 가능하게 하여 경제적 교류의 기반을 마련했다. 결혼식이나 장례식 같은 의례에서도 말은 빠질 수 없는 존재였으며, 이는 공동체적 결속을 강화하는 상징으로 작용했다.
승마 경기와 전통 놀이 역시 공동체적 가치와 협동을 드러내는 장으로 기능했다. 대표적인 것이 көкпар(코크파르)다. 말을 탄 두 팀이 양이나 염소의 사체를 쟁취해 상대 진영으로 가져가는 경기로, 힘과 기량, 전략, 협동심이 동시에 요구된다.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공동체적 결속과 말과 인간의 관계를 재현하는 문화적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고고학적 연구에서도 말의 흔적은 뚜렷하다. 카자흐스탄의 여러 유적에서 발견된 말의 뼈와 장식품, 그리고 жүген(주겐)이라는 마구(harness, 말의 머리에 씌워 고삐를 연결하는 장치)가 출토되었다. 이는 당시 사회에서 말이 단순한 생계 수단을 넘어 교통과 전쟁, 의례와 경제 활동의 중심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케르쿨란 지역에서 발굴된 유적은 말이 공동체의 성장과 생활 기반을 확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입증한다. 말은 경제적·문화적·사회적 기반을 동시에 제공한 존재였으며,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가치가 단절되지 않았음을 확인시켜 준다.
오늘날에도 말은 카자흐스탄 사회에서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도시화와 산업화가 진행되는 가운데서도 말은 국가 정체성과 문화적 뿌리를 상기시키는 존재로 남아 있다. 초원의 자유를 상징하는 말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로서, 카자흐 민족의 자긍심을 지속적으로 뒷받침한다. 말의 해를 맞아 카자흐 민족이 다시금 그 가치를 되새기는 일은 단순한 전통의 회고가 아니라,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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