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미술 작가 양혜규가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기획전 《Himoya: Matrilineal Energies, Oracular Kin》(2026~2027)에 참여해 한국의 신화와 민속 서사를 바탕으로 한 사운드 설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어(고려말)을 비롯해 카자흐어, 러시아어, 영어 등 4개 언어로 제작된 작품을 통해 하나의 이야기가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적 맥락에서 어떻게 새로운 의미로 확장되는지 살펴볼 수 있다.
주카자흐스탄 한국문화원(원장 이점호)은 10월 15일부터 2027년 4월 4일까지 알마티 첼리니 현대문화센터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양혜규 작가의 사운드 설치 작품 제작을 지원했다. 지원 대상은 〈모래 동굴 안의 곰여인 이야기〉(2009)로, 카자흐스탄 현지에서 모집한 언어별 퍼포머들의 목소리를 담아 네 가지 언어로 새롭게 녹음했다.
양혜규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이 작품과 함께 커미션 신작 〈소리 나는 공중 생물 – 야행성 딱따기들〉(2026)도 선보이고 있다. 관람객은 바닥에 설치된 건축적 구조물에 기대어 공중에 설치된 조각을 바라보면서 구조물 아래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감상할 수 있다.
〈모래 동굴 안의 곰여인 이야기〉는 한국의 단군 신화와 일본 작가 아베 코보의 소설 『모래의 여자』(1962)를 결합한 작품이다. 작가는 두 이야기 속 인물을 ‘곰-여인’이라는 하나의 존재로 재해석했다. 곰-여인과 호랑이는 어두운 동굴에서 함께 살아가며, 곰-여인은 동굴이 모래에 뒤덮이지 않도록 끊임없이 모래를 퍼낸다.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반복적인 노동은 작품에서 생존을 위한 인내이자 지속적인 행위로 표현된다. 작품은 이를 통해 고독과 욕망, 변용과 생존, 노동의 의미를 탐구한다.
작품에는 카자흐스탄 현지에서 진행한 조사도 반영됐다. 양 작가는 알마티 인근의 고고학 유적과 고대 암각화를 살펴 조각 작품의 시각적·개념적 토대를 마련했으며, 작품의 형태와 상징, 소리의 울림에는 카자흐스탄 전통 타악기 아사타야크(Asatayak)에서 얻은 영감을 담았다. 고려극장을 방문해 카자흐스탄 한인 디아스포라의 역사와 문화적 맥락을 살펴본 것도 작품에 고려말을 포함한 현지 참여자들의 목소리를 담는 계기가 됐다. 한국의 신화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카자흐스탄의 역사와 언어를 만나 새로운 층위를 형성한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 양혜규 작가 외에도 알마굴 멘리바예바(Almagul Menlibayeva), 시트라 사스미타(Citra Sasmita), 아흐메드 우마르(Ahmed Umar), 라즈니 페레라(Rajni Perera), 타니아 피터슨(Thania Petersen) 등 중앙아시아를 포함해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작가 21명이 참여한다. 전시는 제13회 광주비엔날레 공동예술감독을 역임한 나타샤 긴왈라(Natasha Ginwala)가 기획했다.
이점호 주카자흐스탄 한국문화원장은 “카자흐스탄과 한국 양국의 역사와 문화에서 비롯된 사물과 언어, 신화와 문화적 맥락을 연결하는 작품을 지원하게 되어 매우 뜻깊다”고 밝혔다. 이어 “올해 1월 체결한 첼리니 현대문화센터와의 업무협약(MOU)에 이어 두 번째로 협력한 전시로, 카자흐스탄에 한국 현대미술을 소개하고 양국 간 문화적 대화를 이어 갈 수 있게 되어 기쁘다”며 “앞으로도 카자흐스탄 예술 기관과의 협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양국 간 문화예술 교류를 더욱 활성화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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