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중재 아래 아제르바이잔의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과 아르메니아의 니콜 파시냔 총리가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AP통신은 이번 합의를 “수십 년간 이어진 갈등에 종지부를 찍는 역사적 순간”이라고 평가하며, 남캅카스 지역 안보와 협력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전하는 한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름을 딴 ‘트럼프 회랑(Trump Corridor)’ 구상이 핵심 경로로 포함되었다는 점에서 외교적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주요 당사국과 인근 국가들의 반응도 엇갈렸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란 고위 외교 고문 알리 악바르 벨라야티는 트럼프가 구상한 카프카즈 회랑(남부 아르메니아를 통과해 나흐치반으로 이어지는 교통로), 일명 ‘트럼프 회랑’을 “트럼프 용병들의 묘지”라 칭하며 강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란 외무부 역시 협정 자체는 환영했지만, 외국 세력이 국경 부근에 개입할 경우 지역 안정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경계했다.
BBC는 이번 합의가 정치적으로는 거대한 진전이지만, 실제 이행 과정에서 헌법 개정, 통관 절차, 보안 체계, 운송망 운영 방식 등 핵심 쟁점들이 여전히 미해결 상태라는 점을 지적했다. BBC는 이번 평화협정 이후 아제르바이잔이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완전히 통제하게 되면서, 약 12만 명에 달하는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이 대거 아르메니아로 이주한 인도주의적 현실도 함께 지적했다. 해당 지역의 자치정부는 해체되었으며, 군사 작전과 봉쇄로 인한 민간 피해와 정치적 반발이 아르메니아 내 시위로 이어졌다. 이는 이번 협정이 출발점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BBC는 분석했다.
러시아의 입장도 주목된다. 타스통신은 마리아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의 발언을 인용해,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의 화해는 지역적 맥락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서방식 중재는 중동에서처럼 실패로 귀결될 수 있다”는 견해를 전했다. 자하로바는 특히 2020년 11월 3자 정상회담 이후 러시아 평화유지군이 사태 안정에 기여했다고 강조했다.
카자흐스탄 국영 통신 카진폼은 파시냔 총리가 “오늘 우리는 평화가 확립됐다”고 선언하며, 이번 합의가 주권과 영토 보전을 전제로 한 화해임을 분명히 했다고 전했다. 그는 아제르바이잔 본토와 나흐치반 자치공화국 간 교통망 개방이 지역 협력의 핵심 요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평화협정은 남캅카스 지역의 지정학적 판도 변화와 함께, 미국·터키·이란·러시아 등 주요국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외교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한국은 이 지역과 직접적인 군사적 이해관계는 없지만, 에너지 수급, 유라시아 물류 경로, 다자외교 측면에서의 전략적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사안이다. 특히 ‘트럼프 회랑’이 실현될 경우, 유럽-중앙아시아-중동을 잇는 새로운 육상 물류 축이 형성될 수 있어, 한국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도 연계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미국의 중재로 체결된 이번 평화협정은 국제사회에서 환영과 경계가 교차하는 복합적인 반응을 불러왔다. 협정이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평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남은 과제를 해결하고, 이해관계국 간 신뢰를 구축하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는 점에서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