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에서 여성에게 흔히 붙는 이름 중 ‘울(러시아어 ул, 카자흐어 Ұл, 이하 울)’이라는 접두어가 포함된 이름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울잔(Ұлжан), 울보슨(Ұлболсын), 울판(Ұлпан), 울다나(Ұлдана) 등이 그러한 예다. 카진폼은 최근 보도를 통해 이들 이름이 단순한 개인 식별을 넘어, 전통적인 성별 기대와 가족 구조 속에서 형성된 사회문화적 배경을 반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카자흐스탄의 인구통계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카이르 르스바예프는 해당 보도에서 “울이 포함된 여성 이름은 대개 아들 없이 딸만 태어난 가정에서 지어졌으며, 다음 아이가 아들이기를 바라는 부모의 염원이 담긴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이름들이 과거 카자흐 사회의 가부장적 가치관과 가족 내 남성의 역할을 반영하는 상징적 표현이라고 덧붙였다.
르스바예프는 “전통적인 카자흐 사회에서 아들은 가문의 계승자이자 부모의 노후를 책임지는 존재로 여겨졌으며, 결혼 후에도 부모와 함께 살 수 있었지만, 딸은 시집을 가면 타 가문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부모가 노년에 홀로 남을 수 있다는 불안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울보슨(아들이 태어나기를)’이라는 이름은 일종의 사회적 기원과 기대를 담은 언어적 표현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름들이 여성의 사회적 인식이나 자아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르스바예프는 “이름이 반복적으로 특정 의미를 상기시키거나 조롱의 대상이 될 경우, 심리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이름 자체보다는 가족과 주변의 태도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며, 존중받는 환경에서는 그러한 이름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러한 이름을 성인이 되어 바꾸는 사례는 드물다고 한다. 르스바예프는 “공식 통계나 개인 경험에서 이름 변경 사례를 접한 적은 거의 없다”며, 일부 뉴스에서 소개된 사례는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그는 카자흐스탄에서는 이름 선택과 변경에 있어 비교적 자유로운 환경이 조성되어 있으며, 국가가 개인 이름을 규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럽 일부 국가보다 더 유연한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예를 들어, 아이슬란드에서는 약 2,000개의 공식 이름 목록에서만 선택이 가능하고,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외국 이름 사용이 제한되지만, 카자흐스탄에서는 모욕적이거나 부정적인 의미만 아니라면 어떤 이름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르스바예프는 이름이 여성의 사회적 이미지나 자존감에 미치는 영향은 심리적·사회적 요인에 따라 달라지며, 단순히 이름 자체보다는 가정 내 분위기와 또래 집단의 반응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영국의 연구 사례를 인용하며, 같은 이력서를 제출했을 때 유럽식 이름이 비유럽식 이름보다 더 많은 응답을 받았다는 점에서 이름이 사회적 평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이번 보도는 이름이라는 개인적 요소가 어떻게 사회적 구조와 문화적 기대를 반영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한국 사회에서도 이름에 담긴 가족의 바람이나 시대적 분위기를 되돌아보게 한다. 특히 성별에 대한 기대가 이름에 투영되는 현상은 한국의 ‘남아선호’ 문화와도 일정 부분 유사성을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