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기 위한 선택이 법정에 선 순간, 그 선택의 맥락은 어디까지 이해받을 수 있을까. 카자흐스탄 서부 오랄시에서 전 남편 살해 청부 혐의로 기소된 엘비라 예르케바예바와 그의 지인 막심 쿠즈네초프가 2025년 8월 25일 조건부 형 집행 유예 판결을 받고 석방되었다. 이들은 2024년 2월 체포된 이후 11개월간 구금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왔다.
라디오 아자티크 보도에 따르면, 예르케바예바는 지인을 통해 전 남편을 살해할 계획을 세운 혐의를 받았으며, 해당 제3자가 경찰에 자진 신고하면서 수사가 시작되었다. 경찰은 위장 작전을 통해 두 사람을 체포했고, 불법 무기 소지 혐의도 함께 적용되었다.
예르케바예바는 재판 과정에서 장기간 가정폭력 피해를 주장했다. 전 남편으로부터의 지속적인 위협과 학대 속에서 두 차례 자살 시도를 했으며, 10개월 동안 외부와 단절된 채 은신 생활을 이어갔다고 진술했다. 그녀는 법정에서 “살기 위해 총을 사려고 했을 뿐”이라며, 살해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했으며, 네몰치 재단의 디나 스마일로바는 “엘비라는 총을 소지하지도 않고 단지 사려고 했을 뿐인데도 총을 구매했다는 혐의로 545일 동안 구금되었습니다”라고 밝혔다고 라디오 아자티크는 전했다.
법원은 살해 청부 혐의에 대해 직접적인 실행 의사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두 피고인에게 각각 3년의 조건부 형 집행 유예를 선고했다. 배심원단은 혐의가 합리적 의심 없이 입증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무죄 평결을 내렸으며, 피해자의 장기간 가정폭력 피해 진술과 심리적 상태, 위협에 대한 대응 가능성 등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예르케바예바와 쿠즈네초프는 즉시 석방되었으며, 향후 일정 기간 동안 법적 감시를 받게 된다.
이 사건은 카자흐스탄 내 가정폭력 피해자의 법적 대응 한계와 사법 시스템의 판단 기준을 둘러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여성 인권 단체 ‘네몰치(Nemolchi)’는 예르케바예바의 사례가 구조적 폭력에 대한 국가의 대응 부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지적하며, 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로 몰리는 현실을 비판했다. 단체 대표 디나 스마일로바는 “엘비라가 감옥에서 풀려난 것은 시작일 뿐이며, 이제 그녀를 보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라디오 아자티크는 수사 초기 단계에서 경찰이 예르케바예바의 가정폭력 피해 진술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으며, 피해자의 심리 상태나 보호 필요성에 대한 고려 없이 살해 청부 혐의 중심으로 수사를 진행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사법부 역시 피해자의 상황을 정황으로만 판단하고, 구조적 폭력에 대한 법적 해석이나 보호 조치 마련에는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대응은 가정폭력 피해자가 법적 시스템 내에서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범죄자로 낙인찍히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는 평가다. 라디오 아자티크는 이번 판결이 여성의 자기방어권과 사법적 정의 사이의 균형을 묻는 중요한 사례로 남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