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5일은 대한민국 광복 80주년을 맞는 뜻깊은 날이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이를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와 문화 프로그램이 이어졌고,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도 광복 80주년을 기념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독립군: 끝나지 않은 전쟁》이 한국과 동시에 개봉되어 깊은 울림을 전했다.
그날, 알마티의 또 다른 거리에서는 조용하지만 의미 깊은 추모의 순간이 있었다. 바로 러시아 록 음악의 전설이자 고려인 3세로 알려진 빅토르 초이의 35주기를 기리는 추모 행사와 작은 공연이 카반바이바트라와 툴렌지예바 교차로에 위치한 그의 동상 앞에서 열렸다. 이곳은 유명 커피숍과 문화 공간이 밀집해 있어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장소로, 빅토르 초이의 음악을 기억하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드는 공간이기도 하다.
지난 15일 금요일, 광복 80주년을 기념하는 그날. 그의 동상 앞에는 여전히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추모객들이 모여, 28세의 나이로 요절한 빅토르 초이를 기억하며 조용한 헌화와 자발적인 공연으로 그를 기렸다.
빅토르 초이는 1962년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1990년 8월 15일, 라트비아에서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한 러시아 록 밴드 ‘키노(Kino)’의 리더이자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는 1980년대 후반 소비에트 청년들에게 자유와 저항의 메시지를 음악으로 전하며, 당시 체제에 균열을 일으킨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고려인 혈통을 지닌 그는 러시아 록의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사망 이후에도 그의 음악은 세대를 넘어 기억되고 있다.
그의 음악은 단순한 예술적 표현을 넘어, 억압과 침묵의 시대를 살아가던 청년들에게 자유와 변화의 가능성을 상징하는 목소리였다. 혼혈이라는 배경과 소비에트 체제 속에서 주류가 아니었던 그의 출신은 오히려 그를 더욱 특별한 존재로 만들었고, “외부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노래한 그의 음악은 디아스포라 청년들에게 깊은 공감과 위로를 전했다.
알마티에서도 그의 음악은 여전히 울려 퍼진다. 카반바이바트라 거리의 동상 앞에는 해마다 자발적인 추모 공연이 이어지고, 그의 노래는 거리의 스피커와 청년들의 휴대폰에서 끊임없이 재생된다. 이는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지금도 유효한 메시지로서 그의 음악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그의 가족이 뿌리를 내린 카자흐스탄, 고려인 공동체가 삶을 이어온 이곳에서 그는 문화적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다.
빅토르 초이의 음악 세계는 러시아 록의 전통과 포크적 서정성, 그리고 사회적 메시지가 결합된 독특한 색깔을 지닌다. 그의 밴드 ‘키노(Kino)’는 단순한 록 밴드를 넘어, 체제에 대한 저항과 청년들의 내면을 대변하는 문화적 운동이었다. 대표곡 「Перемен! (변화!)」는 소련 청년들에게 자유와 개혁을 상징하는 노래로 자리잡았고, 「Группа крови (혈액형)」, 「Звезда по имени Солнце (태양이라는 이름의 별)」 등은 인간 존재와 사회적 억압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그의 음악은 강렬한 메시지와 함께, 민중적 감성을 자극하는 멜로디로 지금도 러시아와 구소련 지역에서 널리 사랑받고 있다.
그는 28세의 짧은 생을 살았지만, 그가 남긴 음악과 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다. 그의 락 정신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그의 고향과도 같은 카자흐스탄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빅토르 초이의 음악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지금도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그의 음악은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되묻는 목소리처럼, 세대를 넘어 공감과 울림을 전한다. 오늘 하루, 그의 음악을 한 곡쯤 찾아 들어보는 건 어떨까. 그가 남긴 목소리는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